※ 문피아 연재 ※ 글작가명 HagiNaru <별을 쫓아서>
성문 안은 시끄러웠다. 높은 성벽이 등 뒤로 멀어지기도 전에 사방에서 소리가 밀려들었다. 에런은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곳에 모인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마차 바퀴가 돌바닥을 긁었고, 짐꾼들이 고함을 질렀다. 좌판에서는 구운 고기 냄새와 향신료 냄새가 뒤섞였고, 창문 밖으로 빨랫감이 늘어진 건물들은 서로 밀쳐내듯 붙어 있었다.
길 양옆으로 상점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천막 아래에서는 상인들이 손님을 불렀고, 수레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익숙하게 길 가장자리로 비켜섰다. 에런만 그 틈에서 자꾸 걸음을 늦췄다.
어딘가에서 종이 울렸고, 에런이 고개를 들어 종탑을 찾았다.
“앞 봐.”
카엘의 말에 에런은 황급히 앞을 보며 마주 오던 행인을 피했다.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요?”
“도시니까.”
“다 어디 가는 거예요?”
“각자 갈 데가 있겠지.”
“저건 뭐예요?”
“빵집.”
“저건?”
“염색소.”
“저 골목은?”
앞서 가던 카엘이 멈춰 섰다.
“에런.”
“네?”
“입을 다물면 죽는 병이라도 있나?”
“아니요.”
“그럼 한동안 입을 다물어봐.”
에런은 입을 다물었다. 정확히 열두 걸음 동안만이었다.
“아까 그 여자 누구예요?”
카엘이 한숨을 쉬었고, 에런은 웃었다.
“열두 걸음이나 참았잖아요.”
“그래. 장하다.”
“누구냐니까요?”
“모른다.”
“거짓말.”
카엘이 걸음을 멈췄고, 에런도 따라 멈췄다.
“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봤잖아요."
"봤지."
"아는 사람 보는 얼굴이었는데."
“네가 사람 얼굴도 읽나?"
"조금은."
카엘이 에런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러다 큰코다친다."
"그 말도 많이 듣네요."
카엘은 다시 걸었고 에런은 따라갔다. 성문 밖에 서 있던 여자의 모습이 좀처럼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회색 옷. 아무 장식도 없는 머리. 품에 안은 책.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던 눈.
예쁜 여자였느냐고 묻는다면 에런은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다. 얼굴을 자세히 본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억에 남았다.
무엇보다 카엘의 반응이 마음에 걸렸다. 관심 갖지 마. 카엘은 위험한 것을 보면 조심하라고 했지만, 누군가에게 관심을 갖지 말라고 한 적은 없었다. 그 여자가 어떤 사람이기에 카엘이 저렇게 반응하는지 궁금했다.
* * *
카엘이 묵는 곳은 에런이 상상했던 여관과 달랐다. 좁고 어두웠고 냄새가 났다. 1층은 술집이었는데 바닥에는 오래된 술이 끈적하게 말라붙어 있었다. 창가에 앉은 손님 둘이 낮부터 술을 마시고 있었고, 구석에서는 누군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계산대 뒤에 있던 주인이 카엘을 알아보고 손을 내밀었다.
"선불."
"내가 떼먹은 적 있나?"
"지난번."
"갚았잖아."
"그랬지. 석 달 뒤에."
카엘은 동전 몇 닢을 올려놓았다. 주인이 에런을 보았다.
"쟤도?"
"아니."
에런이 즉시 끼어들었다.
“맞아요.”
카엘이 돌아보았다.
"뭐가 맞아?"
"여기서 잘 거예요."
“돈은?”
“내 건 내가 내죠.”
“그러든가. 동화 여섯 닢.”
에런이 동전을 꺼내려는데 카엘이 손목을 잡았다.
“다섯 닢.”
주인이 말했다.
“여섯.”
“지난달에는 다섯 닢이었어.”
“밀값이 올랐어.”
“밀값이 올랐는데 침대값은 왜 오르지?”
“침대에서 자고 빵과 수프를 먹을 거잖아.”
“쟤는 안 먹어.”
에런이 항의했다.
“먹을 건데요.”
카엘이 그를 노려보았다. 결국 에런의 숙박비는 동화 다섯 닢으로, 빵과 수프를 주문하면 한 닢을 추가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방으로 올라가면서 에런이 말했다.
“그냥 여섯 닢 내면 되잖아요.”
“여행을 하려면 돈을 아껴야 한다. 그러니까 네가 돈을 잃는 거야.”
“한 닢 가지고, 그리고 잃지 않았어요.”
카엘이 계단에서 멈췄다.
“동전 한 닢을 우습게 보는 놈에게는 다섯 닢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에런은 대꾸하지 않았다. 아직 자기 주머니에는 돈이 있었다. 그러니 카엘이 조금 지나치게 구는 것 같았다.
카엘의 방에는 침대 하나와 작은 탁자가 놓여 있었다. 벽에는 오래된 얼룩이 남아 있었고, 창문 너머로는 맞은편 건물의 벽이 보였다.
에런은 문간에 서서 물었다.
"내 방은요?"
"옆."
"그럼 저녁 먹고 올게요."
"어디서?"
"밖에서."
카엘이 짐을 내려놓다 말고 그를 보았다.
"혼자?"
"왜요?"
"아무것도 모르잖아."
"돌아다니면 알게 되겠죠."
카엘은 무언가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해 지기 전에 들어와."
"나 애 아니에요."
“수도를 처음 온 열일곱은 애야.”
“……당신은 몇 살인데요?”
"나가."
에런은 웃으며 문을 닫았다.
* * *
도시는 처음 한 시간 동안은 놀라웠고, 그 뒤부터는 조금 피곤해졌다. 거리마다 비슷해 보였고 골목은 제멋대로 뻗어 있었다. 에런은 두 번 길을 잃었고, 세 번째에는 길을 잃었다는 사실조차 한참 뒤에 알았다. 그럼에도 재미있었다.
큰길에서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골목 하나만 들어서면 분위기가 달라졌다. 좁은 창문 아래에는 물통과 나무 상자가 놓여 있었고, 어느 집에서는 저녁을 준비하는지 양파 볶는 냄새가 흘러나왔다. 길을 물으면 친절하게 알려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손가락으로 방향만 가리키고 가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광장에서는 광대가 불붙은 막대를 던지고, 시장에는 브레나에서는 본 적 없는 과일들이 쌓여 있었다. 에런은 붉은 껍질에 향이 좋은 열매를 하나 샀다. 상인은 동화 한 닢이라고 했다.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처음 보는 것이니 그럴 만하다고 여겼다. 두 골목 뒤에서 같은 열매 다섯 개를 동화 한 닢에 파는 상인을 발견하고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카엘에게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광장 한쪽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구경거리인 줄 알았고 가까이 가보니 사람들이 돌계단 앞에 줄을 서 있었다. 계단 위에는 오래된 건물이 있었다. 성당은 아니었다. 간판도 없이 문 위에는 동그란 돌 하나가 박혀 있었다. 그 표면에 두 개의 선이 교차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에런은 사람 하나를 붙잡았다.
“여기 뭐 하는 데예요?”
중년의 남자가 이상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모르고 줄 섰어?”
에런은 그제야 자기도 줄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뇨. 그냥.”
“기록원.”
“기록원. 무슨 기록인데요?”
“하— 별걸 다 묻네.”
남자는 시덥잖은 질문을 들었다는 듯 앞으로 갔다.
에런은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문 앞 돌계단에는 오래된 빗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높은 창에는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고, 돌계단의 가장자리는 오가는 사람들의 발에 닳아 반질거렸다. 기록원. 이름만으로는 재미없어 보였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열린 문 안을 보았다. 그리고 멈췄다. 문 안쪽으로 익숙한 회색 옷자락이 스쳐 지나갔다.
에런은 잠시 망설였다. 카엘의 말이 떠올랐다.
관심 갖지 마.
에런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 *
안은 바깥보다 훨씬 넓었다. 벽 전체가 책이었고 낡은 종이와 가죽 냄새가 감돌았다. 높은 창으로 들어온 햇빛 속에서 먼지가 느리게 떠다녔다. 발소리조차 조심스러워지는 공간이었지만 에런은 오히려 안쪽을 더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에런은 이렇게 많은 책을 본 적이 없었다. 브레나의 예배당에도 책이 몇 권 있었지만 사제가 함부로 만지지 못하게 했다. 여기에는 수백 권, 아니 수천 권은 돼 보였다. 천장 가까이까지 책장이 이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고, 검은 옷을 입은 서기들이 책과 종이를 나르고 있었다. 에런은 문틈으로 보았던 회색 옷의 여자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로 왔지?”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고, 에런이 돌아보았다. 늙은 서기였다.
"사람을 찾는데요."
"이름은?"
“몰라요.”
“이름을 몰라? 그럼 어떻게 찾으려고?”
“회색 옷을 입은 여자요.”
서기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회색 옷을 입은 사람이 다섯은 있었다.
"저 사람들 말고요."
"나가."
에런은 결국 쫓겨났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등 뒤로 들으며 계단을 내려오는데, 위쪽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소년.”
돌아보니 도시 입구에서 보았던 회색 옷의 여자가 서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에런의 얼굴을 잠깐 살피더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오른쪽 주머니였다.
“그 안에 있는 것. 꺼내 보겠니?”
“뭐요?”
“주머니에 든 물건.”
에런은 제 주머니를 내려다보았다.
“왜요?”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뭘 확인하려고요?”
“꺼내 보면 알겠지.”
에런은 주머니를 더듬었다. 동화 몇 개와 카엘이 준 가짜 은화, 사촌 동생이 건넨 나무 새가 손끝에 닿았다. 동전을 먼저 꺼내 보이자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으로 새를 꺼냈을 때에야 그녀의 눈길이 멈췄다.
“그거야.”
“이 새요? 별거 아닌데.”
“잠깐 봐도 될까?”
에런이 내밀자 여자는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한쪽 날개가 길고 눈이 하나뿐인 새였다. 여자는 그것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잠시 말이 없었다. 엄지가 새의 배를 스쳤다가 멈췄다.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 손끝으로 같은 자리를 다시 문질렀다.
“네 거야?”
“아뇨. 사촌 동생이 줬어요.”
“동생이 만들었나?”
“글쎄요. 직접 만들었는지 물어보지 않았는데.”
여자는 새를 뒤집었다. 배 아래의 먼지를 손톱 끝으로 살짝 밀어내자 가느다란 선 두 개가 드러났다. 서로 교차하는 문양이었다.
“어?”
에런은 기록원 입구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도 비슷한 문양이 있었다. 조금 전까지 우스워 보이던 나무 새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이게 왜 여기 있죠?”
“그건 나도 궁금하군. 그 아이의 아버지는 누구지?”
“우리 삼촌이요.”
“이름은?”
“테오.”
“성은?”
“하르덴.”
여자의 손가락이 멈췄다. 방금 전까지 나무 새를 살피던 눈이 이번에는 에런의 얼굴을 향했다. 여자는 소년의 나이를 가늠하듯 잠시 바라보았다. 하르덴이라는 성이 낯설지 않은 모양이었다. 에런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에런?”
“네?”
“네 이름이 에런인가?”
“맞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여자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나무 새를 에런에게 돌려주었다.
“나를 알아요?”
“처음 보는 얼굴이야.”
“그런데 이름은 어떻게 알죠?”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기록원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계단을 오르던 사람들이 두 사람 옆을 지나갔다.
에런은 새를 주머니에 넣으려다 말고 다시 들여다보았다. 날개가 삐뚤어지고 눈이 하나뿐인 조악한 나무 새의 배 아래에는 두 개의 선이 교차하고 있었다.
“이 문양은 뭐예요?”
“글쎄, 알아야 할까?”
“궁금해요.”
“궁금하다고 해서 다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야.”
“그럼 왜 내 이름을 아는지도 말 안 해줄 거예요?”
“지금은.”
“나중에는요?”
“그건 모르겠구나.”
에런은 여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물어보면 대답을 듣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을 줄은 몰랐다.
“삼촌을 아는 거예요?”
“아니. 모르는 사람이야.”
“그런데 왜 그렇게 놀랐어요?”
여자는 잠시 에런을 바라보았다.
“그건 설명하기 어렵겠구나.”
“왜요?”
“에런.”
그녀가 다시 소년의 이름을 불렀다.
“오늘은 그만 돌아가.”
“아직 아무것도 못 들었는데요.”
“알아.”
“그런데도요?”
“그래.”
에런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녀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였다.
여자는 잠시 에런을 바라보다 계단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잠깐만요. 당신 이름이라도 알려줘요.”
“세린.”
“세린…….”
에런은 그 이름을 잊지 않으려고 조용히 한 번 따라 말했다.
“내일 다시 오면 만날 수 있나요?”
“글쎄.”
세린은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힌 뒤에도 에런은 계단 아래에 서서 나무 새를 만지작거렸다. 아까까지는 사촌 동생이 준 못생긴 선물이었는데, 이제는 묻고 싶은 것이 몇 가지나 붙어 버렸다. 그는 새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궁금한 것은 내일 다시 물으면 될 일이었다.
* * *
여관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어두웠다. 카엘은 1층 구석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에런이 맞은편에 앉았다.
"늦었군."
"조금요."
"도시는 어땠어?"
"비싸요."
카엘이 웃었다.
"뭘 샀는데?"
"과일."
"얼마?"
"말 안 할래요."
카엘이 더 웃었다. 에런은 주인에게 빵과 수프를 주문했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기록원에 갔어요."
카엘의 잔이 멈췄다. 에런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세린도 만났고."
카엘은 잔을 내려놓았다.
“내가 관심 갖지 말라고 했지.”
“관심 갖는다고 해서 잘못되는 건 아니잖아요.”
“아직은.”
에런의 표정이 굳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카엘은 술을 한 모금 마셨다.
"그 여자가 뭐라고 했지?"
"별말 안 했어요."
"정확히."
에런은 잠시 망설였다. 나무 새 이야기를 해야 할까? 카엘에게 숨길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세린이 나무 새를 살펴보던 모습과 삼촌의 성을 듣고 변했던 표정이 떠올랐다.
세린은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았고, 에런은 그게 더 궁금했다.
“내 이름을 맞혔어요.”
카엘의 표정이 굳어졌다.
“네 이름을 어떻게 알았대?”
“그건 안 알려줬어요.”
“다른 말은?”
“없어요.”
거짓말이었다. 에런은 자신이 거짓말을 꽤 자연스럽게 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카엘은 한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세린과 엮이지 마.”
"왜요?"
“엮여서 좋을 게 없는 여자니까.”
"뭐가 안 좋은데요?"
“네가 알 필요 없는 것들이 있어.”
그사이 주인이 가져다 놓은 수프에서는 아직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에런은 숟가락을 들지 않은 채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세린은 궁금하다고 해서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 건 아니라고 했고, 카엘은 자신이 알 필요 없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두 사람 모두 구체적인 이유는 알려주지 않았다. 에런에게는 그 점이 더 마음에 걸렸다.
“카엘.”
“왜.”
“당신은 왜 그렇게 많은 걸 배웠어요?”
에런의 뜬금없는 질문에 카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약 만드는 것도, 이상한 생물도, 가짜 동전 구별하는 것도."
"필요했으니까."
"왜 필요했는데요?"
“살려고.”
에런은 카엘을 바라보았다. 뿌리벌레가 나타났던 밤, 카엘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어떻게 됐을까.
“그럼 나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뭘?”
“위험한 게 뭔지, 어떻게 피하는지. 그런 것들이요.”
카엘은 잔을 내려놓았다.
“에런.”
그의 목소리가 조금 무거웠다.
"안다는 건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일이 아니야."
"왜요?"
"알게 되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에런은 그 말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역시 이해되지 않았다.
“돌아갈 생각은 없는데요.”
카엘은 그를 오래도록 바라보다 고개를 저으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래. 그럴 것 같더라.”
* * *
그날 밤, 에런은 침대에 누워 나무 새를 들여다보았다. 촛불에 가까이 가져가니 새의 배 아래 새겨진 두 개의 선은 낮에 본 기록원의 문양과 일치했다. 사촌 동생은 이 새를 어디서 얻었을까. 삼촌이 준 것일까?
에런은 기억을 더듬었다. 사촌 동생은 자신이 만들었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삼촌에게 받았다고 말한 적도 없었다.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 중, 몇 가지가 사실은 한 번도 확인한 적 없는 것들이었다.
창밖에서 종이 울렸다.
에런은 나무 새를 주머니에 넣었다. 잠이 오지 않아 결국 일어났다. 창문을 열었다. 도시의 밤은 브레나와 달랐다. 등불이 많아서 별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한참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브레나를 떠나기 전 보았던 밝은 별을 찾을 수 없었다.
멀리서는 아직도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딘가에서 문을 닫는 소리가 났고, 골목 아래로 늦게 귀가하는 사람의 발소리가 지나갔다.
그때 아래쪽 골목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골목 안쪽은 어두웠지만, 입구에 걸린 등불이 지나가는 사람의 어깨와 손을 잠깐씩 비췄다. 에런은 창틀에 몸을 기울였다. 회색 옷의 세린이었다. 그녀가 등불 아래를 지나는 순간, 품에 안은 책의 표지가 드러났다. 성문에서 보았던 바로 그 책이었다. 표지 위에는 작은 금속 자물쇠가 걸려 있었고, 불빛을 받아 짧게 반짝였다.
세린이 문득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정확히 에런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에런은 숨을 죽이며, 이 거리에서 자신이 보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린은 분명히 그를 보고 있었다. 잠시 뒤 그녀가 손을 들어 입술 앞에 검지를 세웠다. 조용히. 그리고 골목 안쪽으로 사라졌다.
에런은 한동안 그대로 창가에 서 있었다.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엘은 세린과 엮여서 좋을 게 없다고 했다. 세린은 자신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게다가 밤은 깊었고, 길도 몰랐다.
창문을 닫고 침대 속으로 들어가 담요를 끌어올렸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열을 센 뒤 다시 눈을 떴다.
“젠장.”
에런은 옷을 입고 계단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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