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S.G. 2021. 1. 5. 09:46

 

진심으로 쉼이 간절해서 아무런 생각도 계획도 없이 일을 그만둔지 보름이 지났다.

 

쉬는 동안에는, 구매해서 읽다가 중단한 책을 읽거나, 미룬 한드/미드 시리즈를 밤이 늦도록 보거나, 오래된 사진과 블로그를 정리하거나, 하루종일 질리도록 음악만 듣거나, 드라이브를 즐기다가 아무 카페에 들어가 분위기에 취해도 보고, 커피의 맛과 향을 음미하여 기록하거나, 취미이자 특기를 다시 살려 볼 생각을 했다.

 

그런데 월초부터 겪은 일로 패닉 상태가 되었고, 일주일 뒤엔 트라우마와도 조우했다. 불안정한 심리가 돼 왠지 극복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돼 심란했다.

 

더이상 누군가를 향한 의무도 책임감도 없다. 단지 일하는 동안 제대로 자신을 돌보지 않은 탓의 후유로, 소진 경험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힘겹고, 누적된 피로로 인해 잠에 취하는 때가 많았다. 

 

이미 다 지났지만, 회사를 다니던 많은 날들 중 가장 괴로웠던 건. 어느 순간 웃을 수 없을 것 같고, 찡그리고 화난 것 같은 표정이 될까봐, 나름 낮고 차분하지만 밝았던 어조가 높은 톤의 신경질적인 어투로 바뀔까봐,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일상처럼 습관이 돼... 누군가에게 꽂힐까봐. 내가 행한 모든 방법들이 최선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들이, 늘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작은 파편이 돼 온몸 구석구석을 떠돌았다.

 

내게 "잘하고 있어."라며 힘을 실어주는 목소리에도, 안도할 수 없었고 위안을 얻지 못했다. 왠지 그 말들이 발목을 잡고 늘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늘 체크하고 반성하며 검열하는 과정이 반복 지속되었다.

 

게다가 친절 강박도 있었던 것 같다. 내 한마디가 작은 위안과 위로가 되길, 사랑 받고 있고, 잊혀지지 않는 존재임을 인지하게 하고, 내 손끝이 따뜻하고 부드러웠기를, 내 행동이 웃음의 기폭제가 돼 행복하기를...

 

때론 투덜이가 돼, 내면의 일관성이 결여됐다며 한심해진 적도 있었다.

 

여하간 여러 과정을 통해, 잦은 소진과 피로 그리고 체력적 한계를 경험하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많이 피폐해졌지만, 돌이켜보면 내 행동에 후회되는 건 없다.

 

단지... 일을 그만 둔 현재, 나를 어떻게 돌아보고 돌봐야 하는지가 고민된다. 생각은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들고, 질문의 답을 찾다 지우다를 반복하고, 그러다 감정의 퇴행을 거쳐 어린 아이처럼 울고 나서야 비로소 편안해졌다. 참... 단순하지만 단순하지만은 않은 과정이었다. 그리고 다행이다. 아직 울 수 있어서, 감정이 침체되고 정체된 채로 지속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